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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관람기'에 썼듯, 제주도에는 뜬금없는 박물관이 꽤 있다.
그 '뜬금없음'엔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또한 피해 갈 수 없겠지만,
그 정돈 엔터테인먼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달까.

뜬금없음의 선봉장엔 '아프리카 박물관'이 최 정상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제주도와 아프리카.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기에 저 이역만리 타국의 흑형/흑누나/흑린이들은 이 동방의 섬에
박물관을 지어야 했을까.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

난 이 아프리카 박물관의 뜬금없음과 얼간이같음을 비웃어 주려고 찾아갔다.

제주도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 하에 박물관이 무수히 세워지고 있는데, 그 덕에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수준 미달인 관람관이 넘쳐나고 있다.

이 아프리카 박물관 또한 그런 잉여공간일것이라는 가정하에 찾아갔다는 이야기.

 

사건의 발단.
사실 작년에도 이 간판의 아프리카 박물관을 보고 정부 관료들을 마음껏 비웃어줬더랬다




참고로 말하자면 중문 관광단지 입구에서 아프리카 박물관은

정말정말정말 멀다.

반드시 차를 가지고 갈 것. 단지 내에서는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 박물관의 위엄.
'아프리카 박물관'이라고 치기엔 너무 길어
내 손가락이 아픈 관계로 이제부터 '흑물관'이라고 부르겠다







흑물관의 입구. 건물의 위엄에 비해 입구는 쪼잔하기 그지 없다







안에 들어서자 마자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가면. 상당한 포스를 자랑한다







왠지 전시하고 남는 오갈데 없는 잉여 전시품들을 세워놨다는 느낌.
들어가는 길가의 오랑우탄이 잔망스럽기 그지 없다






어쨌든 들어갔더니 아프리카 관련 사진들이 잔뜩 전시되어있다.





요리보고




저리봐도 ..
사진들 밖에 없어 으흥






그렇다.

김중만씨가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들 밖에 없다.

..




..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너 .. 정말 여기 돈 주고 온거야?






아 .. 이건 정말 너무 하잖은가.

난 아프리카 박물관에 온거지 아프리카 사진전에 온 게 아닌데 이 무슨 .....





제대로 낚였다는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댕김






어쨌든 7천원이나 받아먹고 사진만 놔두기엔 민망했는지 어디선가 잘라온 나무.
애먼 희생자만 늘어간다








머나먼 이역만리 타국까지 와서 한땀한땀 미장질을 하고 있는 흑형들





아 .. 아무리 돈을 버릴 각오로 온 곳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나.
난 네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에 온게 아니란 말이다.



..


..


라고 생각하며 한탄하며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와우.



이것이야 말로 내가 바라던 박물관.

1층은 김중만씨의 사진들을 모아 둔 곳이고, 2층은 아프리카의 공예품들을 전시해 둔 곳이다.
민망해라 헤헤


이제야말로 본격 아프리카 박물관




아프리카 각 지방의 공예품들과 유물들이 엄청나게 전시되어 있다





나름 박물관 덕후라 이곳 저곳 다녀봤지만,
아직까지 이정도로 훌륭하고 다양한 아프리카 관련 소장품은 처음






개성넘치는 아프리카 유물들(이하 '흑물')이 대거 포진






여느 문명들 처럼, 가면과 다산을 상징하는 여성 조각들이 많다







이놈들아 엄마 도망 안간다








아프리카 지역 한 부족의 전통 가면(이하 '흑면'). 그들의 멋진 개성이 보이지 않는가?




부족마다 흑면들의 모양이나 표정, 형태가 제 각각.
그런 차이를 찾아 보는 것 만으로도 시간은 절로 흘러간다







청말 엄청난 수의 소장품들이 돋보인다.
아프리카 관련해서 이 정도로 공들인 곳이 있었던가






3층은 기념품 판매점.

사실 박물관에 포함되어 있는 기념품 판매점들은 얄팍하게 전시품들을 본딴 싸구려 열쇠고리나 파는게
고작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기념품이 아니라 소장품의 영역에 들어 갈 수 있을정도로 고 퀄리티 기념품들.
여기 파는것들만 모아서 박물관 열어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




아직 끝이 아니다.


이곳 흑물관은 하루 세번(11시 30분, 2시 30분, 5시 30분) 관람객들에 한해 전통음악 공연도 하고 있다.
30분간 공연을 하는데, 정말 최고.
7천원 내고 이 공연만 봐도 아깝지 않다.



공연 시작 전. 두근두근

흑누나와 흑형들의 전통음악 공연. 중간 흑누나는 춤도 추신다.
왠지 모르게 춤추는걸 보고 있노라면 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는게 죄송스럽고 황송한 느낌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렬하고 멋진 공연이라 동영상으로나마 담아두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공연중엔 사진촬영이나 동영상 촬영을 금하고 있다.



공연이 끝난 뒤, 관람객들과 함께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참고로 왼쪽 흑형과 흑누나는 커플, 오른쪽 흑형과 왼쪽 흑형과는 형제사이라는군요.
오른쪽 흑형은 26살. 의외로 흑린이



공연을 너무 감명깊게 봤던지라 그들이 노래했던 곡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공연장 아나운서(한국인) 에게 물어봤다.






아나운서 : 어 .. 글쎄요? 직접 물어보시는게 어떨까요?

나 : 저 흑ㅎ... 아 아니 저분들이 한국말도 할 줄 아세요?

아나운서 : 아뇨. 영어 할 줄 알아요. 직접 물어보세요.



나 : ..........아 ..... 직접요?

아나운서 : ...... 네 ..

나 : .. 영어로?

아나운서 : .............

나 : .................ㅋ

아나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나운서 : 영어 잘하게 생기셨는데 얘기 해보세요(사진에서 왼쪽 흑형  모셔옴)

나 : 아 앙대




도대체 영어 잘하게 생긴 얼굴이란 무엇인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흑형이 내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난 바람에 안되는 외국어로 얘기 했다.






나 : 어 ... 음.... 너도 알겠지만 .... 내말은 그러니까 ....

흑형 : ?

나 : 공연 짱이더라. 죽여줬음.

흑형 : 오케오케 땡큐땡큐.

나 : .....................

흑형 : .....................

나 : .....................

흑형 : ....................................나 가도 됨?

나 : 아 앙대

흑형 : ..................................

나 : ......................................

나 : 아 음 ..... 나 너 공연 좋았다... 근데 음 ...... 가사 ..... 모른다 ..... 뜻 ..... 나 ..... 알고 싶다 ......

흑형 : 음 첫번째 곡은 우리나라(카메룬)에 있는 산을 찬양하는 곡이야. 무속신앙이랄까. 그런거고.
         두번째 곡은 성년의 날에 불러주는 곡이야. 성인이 된 아이들을 축복하는거지.
         도움이 됐어?

나 : 음 어 고맙다 완벽한 설명 .. 내가 본 최고의 공연이었다 .. 너네들 디스켓같은건 안나오냐?

흑형 : 디스켓?

나 : 아아 디스켓이 아니라 디스크 .. 어 .. 내말은 .. 앨범 .. 뭐 그런거 ..

흑형 : 아아 .. 글쎄 아직까진 모르겠다.

나 : 시간 내줘서 고맙다. 좋은 하루 보내달라.

흑형 : 어어 고마워. 너도 좋은 하루!










그렇게 흑물관의 밤은 깊어만 가고...


정말 최고.

내가 지금까지 다녀온 모든 박물관을 통틀어서도 탑 랭크안에 들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박물관 설립자의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할까.
동선이 고려된 전시품들의 레이아웃, 깨끗한 관리, 상당한 불륨의 볼거리, 거기다 공연까지.
대인배스런 사진촬영 허용. 그 어느 것 하나 빠질것이 없다.


반드시, 반드시, 제주도에 왔다면 반드시 가 볼 것. 반드시!



총점 : ★★★★★ + ★
한마디 : 정말 최고의 박물관. 하지만 중문단지 내에서도 너무 후비진 곳에 있어 찾아가기가
            너무 불편하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별 5개로도 부족하다.


소리섬박물관 담당자양반, 내가 하는 말 듣고 있습니까?!

이 쓰레기 박물관의 상태에 대해선 조만간에 특집으로 다룰 예정임









Epilogue.


박물관을 다녀왔더니 배가 고파서 두리번 거리다 발견 한 곳.
한창 흑형들을 봤더니 흑돼지가 먹고싶어졌다



남자라면 혼자서 흑돼지 정돈 구워먹어야 하는 법



어이쿠야 게눈 감추듯 먹었고나
집에 돌아와서 배가 찢어지는 줄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내가 묵었던 호텔. 오전 10시만 되면 청소부 아주머니가 벌컥벌컥 문을 열어재낀다.
덕택에 샤워하다 심장마비로 돌연사 할 뻔



이번 여름엔 아직 다 못가본 박물관을 돌아볼테야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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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 남짓만에 다시 찾아온 제주도.
일전에 찾아 왔을땐 2달간의 체류기간 덕에 여유있게 나돌아 다녔지만, 이번엔 2박 3일의 짧은 (업무상) 일정으로 인해 6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만이 주어졌다.
그래서 이번엔, 큰 욕심 없이 이번해 중문단지에 새로 생긴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의
여유있는 관람을 목표로 이동했다.


지도를 클릭하시면 위치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새로 생긴 박물관이라 지도에 업데이트 되진 않았다. 테디베어 뮤지엄 건너편이니 참고 할 것


무리 오후 3시라지만 서울과 너무나 큰 괴리의 기온. 참고로 서귀포시는 2~3도 더 따뜻하다

내 숙소는 서귀포였던지라, 시외버스를 타고 중문단지로 이동.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아래는 시외버스 좌석.
키가 크거나 다리가 긴 사람은 반드시 버스 맨 앞자리를 점거 할 것.

다리를 .. 제대로 펼 수가 없다


허리를 틀어야 그럭저럭 앉아서 갈 수 있음. 내릴때 쯤엔 창자가 꼬여 펼쳐지지 않을 정도


참고로 현재 위치 .. 라고 쓰려고 다음 지도를 켰건만 바다 한가운대를 표시중. 도대체 여긴 어디여


도의상 경쟁업체의 지도는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다른 방도가 ..


어쨌든 도착. 그나저나 아프리카 박물관이라니..



약 30분 걸려 중문단지로 도착.
이곳엔 고급 호텔들이 몰려있고, 박물관도 꽤 많다.
참고로 중문관광단지에는

테디베어 박물관,
초콜릿 박물관,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소리섬 박물관,
아프리카 박물관,
여미지 식물원,
불곰 박물관(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등이 포진.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곳은 이번해 1월 5일에 오픈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과 '아프리카 박물관', '불곰 박물관'.

사실 무엇보다도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이 가장 큰 주안사항이었기에 부푼 맘을 안고 달려가기 시작.


반도가 영하 17도가 됐든 말았든 열대우림의 위용을 자랑

'이색기들아 어서 와서 돈을 써라' 뭐 이런 까라로 관광객들에게 손짓하는 듯한 프로펠러.

서귀포와 펭귄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나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 하긴 아프리카 박물관도 있는데 뭐..

이곳이 바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입구부터 범상찮다

해가 떨어지면 건물이 일어나 퇴근한다고 해도 수긍 할 수 있을것만 같은 전경


이곳이 바로 지옥문의 입구

참고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미국의 야구선수이자 만화가인 로버트 리플리가 만화 소재를 얻기 위해
전 세계 198개국을 돌며 35년간 신기한 물건들과 사진등을 수집한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후, '리플리 재단'을 설립하여 세계 곳곳에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을 세우게 되며,
그 박물관은 현재 제주도에 위치하고 있는 그것을 포함해 28개에 이르게 된다.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Reply's Believe it or not은 그의 오랜 노력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엔 부잣집 도련님의 여행&수집 오덕의 산출물이라는 얘기.



부럽다 제길.




..


어쨌든, 아래는 박물관 내부의 소장품들 (당연하지만, 사진촬영이 가능하기에 찍었다)

'동양 나무돈'이라고 해서 돈이 자라나는 오리엔탈매직 뭐 이런건 아니고 .. 그냥 공예품.
여기서 돈을 잘라 썼다는군요.


식인종과 함께한 리플리. '제 발로 찾아온 식량과 함께' 정도가 제목으로 어울릴 듯.



옥수수 껍질로 만든 턱시도. 신기하다는 느낌보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느낌

어머 이게 뭐람

옆에서 구경하던 초딩은 놀라 떡실신

리플리가 아무리 수집오덕이라 하더라도 사람까지 수집하긴 무리니 ..

'양고기와 함께 이 친구를 오븐에 넣고 구웠더니 양고기만 익혀져서 나왔더라 ..'
이쯤되면 도시전설 간지


티벳의 인골을 이용한 공예품과 무기.
몇년 전에 삼청동에서 사라진 티벳 박물관이 그리워져 눈시울이 ..



흑형들이 타인에게 저주를 내릴때 쓰는 인형. 일본에서 쓰는 저주인형따윈 애들 장난감일 뿐

....

세상에 중요한 것 세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믿음, 소망, 곧ㅎ ..더라 ..

조그맣게 가공한 사람 머리를 들고 웃고있는 리플리의 생전 사진.
아무리 신기하다해도 사람머리를 들고 저렇게 해맑게 웃을 것 까진 ..


난 이런게 너무 좋다 두근두근 

이방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문지기

얄팍하기는 .. 쯧

박물관의 미래를 위해 해당 담당자의 권고사직이 필요 하다

1850년이나 지금이나 순진한 사람 등쳐먹는 사기는 끊임이 없다

나름 신선했던 고문실

아래의 레버를 당기면 ..

해골이 비명을 지르며 골반뼈를 움찔거린다.
참고로 우측으로 갈 수록 더욱 높은 톤으로 소리를 지른다.

미-파-솔-라-시 라는 느낌이랄까

이건 정말 꽤나 리얼

나같은 노약자를 위해 친절히 안내판을 만들어뒀다


실제로 몇몇 전시품은 모르고 작동 시킬 경우 상당히 놀랄 여지가 있는것들이 꽤 있는데,
친절하게도 그런 전시품에 대해서는 안내가 적혀있다.
개인적으로 깜짝놀래키는걸 상당히 혐오하기 때문에 고마웠음.
새로운 박물관 답게 세심함이 돋보인달까.


사진으로 보니 좀 신기한걸

박물관의 끝자락. 어쨌든 상당한 볼륨을 자랑하는 박물관이다




만화경 룸에서 기념 샷



작년 여름, 중문에 찾아와서 한창 공사중인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을 보면서 꼭 다시 찾아오리라고 마음 먹었는데, 어찌 운이 좋아 시기가 잘 맞게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깔끔한 분위기에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겉에서 박물관을 보았을땐 관람공간이 매우 작아보여 (실망할)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들어갔지만 의외로 상당한 볼륨과 훌륭한 공간활용 등으로 인해, 전시품들을 자세하게 관람한다는 전제하에  1시간 정도는 충분히 즐기고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점수 : ★★★★★
한줄평 :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반드시 가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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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

그냥 그런 이야기 2009/03/30 16:42 Posted by cool_uk

 오늘 동아리 동기와 병원에서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 돌아왔더니,
동생과 어머니는 어딜 가셨는지, 아버지만 계셨다.

 보통 이시간에 어머니와 동생이 함께 나가는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 방에 돌아왔는데, 저녁을 너무 일찍 먹었던 터라 출출해서 냉장고를 뒤졌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야채 외엔 간식거리를 찾을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차가운 물만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는데, 동생과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인사를 드리고 방에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어머니가 먹고 남은거라고 파파이스 치킨을 내미셨다.
안그래도 출출했던 참이라 게눈 감추듯 신나게 먹어치웠는데, 먹으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이상하게
가족들이 말이 없었다.



 동생도 나도 학생인지라 최근 가족간에 다 같이 모이는 일이 줄어들어서, 이렇게 다같이 거실에
모이면 그냥 서로 일상적인 얘기들을 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우울, 아니 우울하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기묘한- 그런 느낌마저 감돌고 있었다.

  치킨을 뜯으며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아무래도 여동생과 어머니가 뭔가 트러블이 있었던게 틀림이 없었다. 일단 모녀가 드물게도 이 야심한 시간에 나갔다 왔다는건 뭔가 진중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얘기가 오고갔다는 것 정도는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 조차도 생각해 낼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일단 세부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대화가 없이 숨막히는 공기 속에서
TV속의 스포츠 뉴스캐스터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축구얘기를 떠들고 있는걸 억지로 듣고 있는건
나로써는 꽤나 고역이기 때문에, 닭고기도 먹는둥 마는둥, 배고픔도 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르바이트가 힘들었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로 왔다갔다 한 덕분에 아무래도 좀 피곤해진
나는, 내일 할 일들의 todo 리스트를 대강 작성하고
잠자리에 누웠는데,알람을 맞추지 않았던게 떠올라 핸드폰을 확인했다.

 남은 배터리는 한칸.
충전하는게 귀찮아 이렇게 내버려뒀다가 밤새 배터리가 다 떨어져 알람을 못듣는 바람에 제 때 일어나지 못해 일이 귀찮아 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 투덜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



이런 젠장.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충전기가 없다.
필시 동생이 가져다 쓰고 갖다놓지 않은 것이리라.


  (누구나 그렇지만) 난 내물건에 남이 손대는걸 꽤 싫어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 있어서는 내 동생이 무딘 편이라 가끔 나와 트러블이 생기곤 한다.

 동생 방이 내 방과 멀리 떨어진것도 아니지만, 인간이라는게 게을러지면 한도 끝도 없는지라
한참을 뭉기적거리다 내일도 늦잠을 자면 또 할 일이 딜레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투덜거리며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


똑똑


 동생의 방을 노크를 했지만 대답이 없는걸 보면 자고 있나보다.
문을 살며시 열어봤더니, 캄캄한 방에서 자고 있는 동생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충전기를 찾느라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널부러진 종이들과 잡동사니들을
떼어내며 짜증이 치밀어 올라, 동생이 잠에서 깨기나 말았기나 그냥 방 불을 켜고 찾기로 마음먹었다.


딸깍. 딸깍. 딸깍딸깍.


이런 제기랄. 불이 켜지지 않는다.

.....솟구치는 짜증을 참으며 핸드폰의 라이트를 켜고 다시 충전기를 찾기 시작했다.
빛으로 바닥을 훝으니 널부러져 있는 종이 쪼가리 중에 분홍색의 손바닥 만한 종이가 눈에 띄었다.

 동생의 사생활은 지켜주는 편이라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 종이를 봐도 평소엔 일부러 읽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왠지 종이 색도 그렇고 빨간색으로 커다랗게 적혀있는 글자에 왠지 호기심이 동해서 종이를 집어들고 읽어봤다.



'좋은 하루 보냈니?
오늘도 문제 풀때 남한테 물어보면 안되는거 알지?
그럼 이번에도 고생해'
....




뭐야 이건...


 동생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여자애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메모로 주고받는건 가끔 봐왔으니까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지만, 여자아이 글씨체가 아닌데다, 어떻게 보면 글쎄.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몇자 안되는 글에서 -필체와 글자크기, 색깔 등등에서- '대단히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느낌은 또 처음이라 호기심에 마저 읽어내려갔다.



........
너희 집에 있는 모든 책의 권수는 몇권일까?
....



 푸하. 살다살다 이런 메모는 또 처음 봤다.

뭐야 뜬금없이...

마저 읽어봤다.



......
항상 내가 지켜보고 있는거 알지?

지난번엔 문제냈을때 너네 엄마한테 일러바친거 보고
그냥 윽박만 지르고 말았는데

이번에도 누구한테 말만해봐 지난번처럼 질질 짜던 말던
당장 찾아가서 칼로 찔러 죽여버릴테니까.





....뭐야 이거....

처음에 메모지 주워 들었을때 이상한 느낌은 이거였나?
그리고 밤에 거실 분위기가 이상했던것도 설마 이건가?
뭔가 머리가 복잡해져 오면서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나저나 지켜보고 있다고?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책상에 있던 동생 핸드폰이 '외쳤다'.

젠장. 미칠듯이 놀랬다.

동생의 핸드폰은 메세지가 오면 바로 화면에 띄워지게 세팅이 되어있었는데, 거기엔



시작


이라고만 적혀있었다.



시작?
시작???

무슨소리지?


조금 무서워졌다.


부연설명을 조금 하자면, 우리동네가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 아파트끼리 마주보고 있는 모양새인데,
이게 생각보다 건물들이 가까이 포진해 있는 바람에 망원경이라던지 기타 도구를 사용하면
부주의한 집의 경우엔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수도 있는 구조였다.


역시 문자메세지를 읽고 반사적으로 방의 창문방향 아파트들을 바라 봤을때,
집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아파트들의 수많은 베란다가 내동생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입안의 침이 말랐다.


머리속엔 어떻게 해야할지,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스토커인가? 강도?? 그냥 친구들끼리 장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나중의 단서나 경찰에 제출할때를 증거품을 제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면서 그 지랄같은 메모지를 찾았다.

이상하다.

방금전에 동생 핸드폰 옆에 놔뒀던 메모지가 그사이에 사라졌다.
메모지를 읽고, 문자메세지를 보고, 잠시 혼란스러운 시간 - 그 시간들의 합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짧은 시간에 메모지가 사라졌다.



설마 지금 방에 숨어있는건 .. 가?



지켜본다는 의미가 방에서 지켜본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설마..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만약의 상황에 사용 할 수 있는 무기라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생은 아무것도 모른채 침대에서 곤히 자고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유일하게 방안에서 불빛을 내고 있는 내 오른손의 핸드폰.
갑자기 진동이 왔다.
모르는 번호에게서 문자가 왔다.

떨리는 손으로 확인해봤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왜 그걸
니가 보고
있냐





질문들만 머리속에 무수히 떠돌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있다는걸, 이방을 보고있다는건 확실하다.
그리고 내 번호도 알고 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기하나 없이 이대로 멍하니 있다간 어떤일이 생길지 모른다.
먼저 부모님부터 깨워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공포에 짓눌려서 거의 기다시피해서 큰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이불속에서 잠들어 있는 동생을 주시한 채로.

필사적으로 문들 두드렸다.



일어나보세요. 일어나보세요 빨리.....



문이 열렸는데, 놀랍게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잠에서 깨어 계셨다.
아버지는 침대에 앉아계시고, 어머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계셨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은 해야겠는데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버버 거리면서 손가락으로
동생 방을 가리켰다(사람이 정도 이상으로 당황하면 바보가 된다는걸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런데 내 상태가 이정도로 말이 아닌데, 두 분은 날 보고도 미동도 않으셨다.



빨리 좀 나와보세요 빨리!!!!!!



아버지는 뭔가 다른곳을 쳐다보고 계셨고, 어머니는 어딘가와 계속 통화를 하셨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걸 보고 계시면서도 왜....?


그 정신없는 와중에 어머니가 통화하는 내용이 내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네.... 더 심해지는거 같아요....
걔가 이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요 며칠전부턴 메모를 남기면서....
온 식구 혼을 빼놓고 있는데... 진짜 몽유병 맞나요? 점점 더 심해지는것 같은데...
정말 일부러 저러는건 아니에요?"




몽유병???

일부러 그런다고??????

무슨말씀이시지????

무의식중에 내동생을 쳐다봤다.




동생은 촛점없는 눈으로 날 바라보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꾼 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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